
2017년 개봉한 영화 원더는 국내 관객 100만 명을 넘기며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아이들이 학교에서 먼저 보고 와서 집에서 다시 틀었는데, 솔직히 그날 밤 꽤 오래 생각이 남았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편견을 이겨낸다"는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보면 그 한 문장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영화입니다.
편견이라는 벽 앞에 선 아이, 어기의 배경
영화의 주인공 어기 풀먼은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Treacher Collins Syndrome)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이란 안면골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선천성 유전성 염색체 질환으로, 눈과 귀, 턱과 광대뼈 등의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희귀 질환입니다. 어기는 태어나자마자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27번의 수술 끝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고 결국 인정받는 서사로 끝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원더는 그 공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어기의 누나 비아, 친구 잭 윌, 심지어 어기를 멀리하던 아이들까지, 각 인물이 저마다의 챕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줍니다. 이를 영화 기법으로는 다중 시점 내러티브(Multi-Perspective Narrative)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중 시점 내러티브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번갈아 서술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한 인물의 시선에만 갇히지 않도록 해주는 구조입니다.
제가 특히 몰입했던 것은 비아의 파트였습니다.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부모님의 시선이 늘 어기에게만 쏠리는 현실을 조용히 감내하는 비아의 모습은, 뭔가 다른 결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저희 집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 후 적응을 못해 울고 오던 시절이 겹쳐 보이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영화 원더가 전하는 핵심, 친절과 편견의 실체
원더에서 브라운 선생님이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격언이 있습니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선택하라."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일반적으로 편견은 정보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어기를 처음 보고 놀리던 아이들도, 어기와 시간을 보낸 뒤에는 달라졌습니다. 정보가 바뀐 게 아니라 경험이 바뀐 것입니다. 잭 윌이 어기와 친해진 계기도 거창한 이해나 공감의 순간이 아니라, 함께 시험 컨닝을 하고 웃고 떠드는 소소한 일상이었습니다. 이 지점이 저는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여기서 친사회적 행동이란 타인을 돕거나 배려하는 자발적 행동을 의미하며,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인식 변화와 직결된다는 것이 심리학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심리학회(APA) 연구에 따르면, 직접적인 접촉과 협력 경험이 편견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원더에서 어기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수학여행 중 어기와 잭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장면은, 바로 그 '직접 경험'이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거창한 설교가 없습니다. 그냥 같이 싸우고 나서 머쓱하게 서 있을 뿐인데, 그게 훨씬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원더가 다루는 핵심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편견은 정보가 아닌 경험으로 바뀐다
- 친절은 선택이며, 그 선택이 주변을 바꾼다
- 어기의 가족 각자가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 조연처럼 보이는 인물(비아, 잭, 미란다)도 각자 완전한 서사를 가진다
내가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제가 이 영화를 특히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아이들 등굣길에 함께 마주쳤던 한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발을 절뚝이며 몸이 뒤틀리듯 걷는 아이였는데, 매일 같은 시간 등교를 했습니다. 그 꾸준함이 어기와 겹쳐 보이면서, 외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다름일 뿐이라는 생각이 새삼 크게 와닿았습니다.
어기처럼 선천적 안면기형을 가진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국내 희귀질환 지원 연구에 따르면 외모 차이로 인한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 경험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심리적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회적 낙인이란 특정 특성을 가진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으로, 당사자의 자존감과 사회 적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출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저는 원더를 가족 영화라고 단순하게 분류하는 시각에 조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이지만, 본질은 "내가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어기의 독백처럼,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원더는 그 짐이 겉으로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가 어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조용하고 단단하게 말해줍니다.
어기가 가진 단단한 내면은 가족들의 든든한 사랑과 지지, 누나의 희생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건네는 작은 다정함이 얼마나 거대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헬멧 속에 숨어 있던 어기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때, 관객들 역시 마음속 깊은 위로와 함께 세상을 바라볼 따뜻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