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영화가 아니라 퀸의 음악 자체에 감동받은 게 아닐까요? 저도 영화를 본 직후에는 그 여운이 워낙 강해서 그냥 좋은 영화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리뷰들을 찾아보고 나서야 '아, 내가 감동받은 건 퀸이지, 이 영화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조금 상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대부분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퀸과 프레디 머큐리, 왜 지금도 전설인가
퀸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생 때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5년 전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포레스텔라라는 그룹이 We Are the Champions를 불렀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퀸의 음악이 특정 세대만의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여전히 사람들에게 용기와 전율을 준다는 것을 그 순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단순한 보컬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보이스 레인지(voice range)를 지닌 가수였습니다. 보이스 레인지란 한 가수가 낼 수 있는 음역의 폭을 의미하는데, 프레디는 4옥타브에 가까운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인종차별과 외모 콤플렉스, 성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까지 짊어지고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무대 위 폭발적인 에너지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삶 전체를 불태우는 몸짓처럼 보였던 것이겠죠.
퀸이 전설로 불리는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핵심적인 이유를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멤버 각자가 작사·작곡이 가능한 다중 창작 구조
-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 (록, 오페라, 발라드, 팝)
- 시대를 초월해 반복 소비되는 곡들의 보편적 감동
전기 영화로서의 보헤미안 랩소디, 얼마나 완성됐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바이오픽(biopic) 장르에 속합니다. 바이오픽이란 실존 인물의 삶을 극화한 전기 영화를 뜻하며, 사실의 재현과 극적 각색 사이에서 항상 균형을 잡아야 하는 장르입니다. 이 영화는 프레디 머큐리가 공항 짐꾼으로 일하던 팔로크 불사라 시절부터 퀸의 결성, 세계적인 성공, 그리고 에이즈 진단까지의 여정을 담아냈습니다.
라미 말렉의 연기는 분명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그의 연기를 보면서 '저게 연기인가'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프레디 특유의 돌출된 앞니, 두툼한 콧수염, 무대 위의 독특한 마이크 그립까지 외형적인 재현도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영화 자체의 서사 편집은 아쉬움이 남는 수준이었습니다.
고증 오류도 몇 가지 눈에 띄었습니다. 예를 들어 1985년 리우 공연이 1978년으로 바뀌어 등장한다거나, 앨범 발매 시기가 실제와 다르게 묘사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퀸의 팬이라면 자연스럽게 눈에 걸리는 부분들입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극적 각색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과 너무 동떨어진 설정은 몰입을 방해합니다.
또한 영화는 퀸의 초기 앨범들이 상업적으로 고전했던 현실을 충분히 그려내지 않았습니다. 성공이 너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처럼 묘사되면서, 밴드가 음악적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생략된 느낌을 줍니다. 퀸의 팬으로서는 조금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라이브 에이드 재현, 그 전율의 순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장면은 단연 압도적입니다. 라이브 에이드란 1985년 아프리카 기아 구호를 위해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동시에 열렸던 초대형 자선 콘서트로, 전 세계 약 15억 명이 TV로 시청한 역사적인 무대입니다(출처: BBC).
저도 이 장면에서는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가 프레디의 동선, 곡 순서, 손짓 하나하나까지 실제 공연 영상에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라미 말렉이 그 장면을 이끌어가는 에너지도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편집 방식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공연 도중 TV로 보는 관객 장면, 후원금 모금 화면, 가족들의 반응 컷이 반복적으로 삽입되면서 음악의 흐름이 자꾸 끊겼습니다. 관객이 프레디의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려는 순간마다 화면이 바뀌어버리니, 몰입감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 영화에서 음악을 끊는다는 건 치명적인 연출 실수라고 느꼈습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보면,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에이드 당시 아직 에이즈 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에이즈를 알게 된 이후 죽음을 직감하면서 음악에 더욱 몰두했고, 그 시기에 퀸의 후반기 명반들이 탄생했습니다. 영화가 이 사실을 역으로 활용했다면 훨씬 강렬한 드라마가 됐을 텐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영화가 놓친 것,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궁극적으로 실패한 지점은 어디일까요? 저는 프레디 머큐리의 천재성보다 그의 불행을 너무 많이 나열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방인으로서의 고독, 인종차별, 성 정체성, 에이즈, 주변의 착취 등 그의 아픔을 하나하나 열거하느라, 정작 그가 왜 위대한 a뮤지션인지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뮤지션 전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음악이 왜 위대한가를 관객이 체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는 당시 라디오 규격인 싱글 컷(single cut) 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약 6분짜리 곡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차트 9주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싱글 컷이란 라디오 방송을 위해 통상 3분 내외로 편집되는 곡의 형식을 말하는데, 퀸은 이 관행을 정면으로 거부했고 대중은 오히려 그 선택에 열광했습니다(출처: Official Charts Company).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레드 스페셜(Red Special)도 이 영화에서 꽤 실감나게 재현됐습니다. 레드 스페셜은 브라이언 메이가 아버지와 직접 손으로 제작한 기타로, 퀸의 독특한 음색을 만드는 핵심 악기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디테일 하나가 팬들에게는 큰 감동이 됩니다.
멤버들 간의 교감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오히려 달랐습니다. 프레디가 에이즈 사실을 멤버들에게만 먼저 알리는 장면, 그리고 퀸의 품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말없이도 충분한 감정이 전달됐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영화가 괜찮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아니라 퀸의 음악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한, 어떤 전기 영화든 최소한의 감동은 보장된 셈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와 퀸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훌륭한 입문작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퀸의 오랜 팬이라면 영화보다 실제 라이브 에이드 공연 영상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직접 무대를 장악하는 그 20분짜리 영상이야말로, 어떤 영화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전설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