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남은 시간'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때 떠올린 질문과 너무 닮은 영화를 최근에 봤습니다. 당시에 나 역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도 해보았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해도 애드워드의 말처럼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의 삶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왔고 앞으로의 내 인생도 가족과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라는 두 거장의 만남, 영화 [버킷리스트]입니다.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영화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시한부 선고와 버킷리스트, 실제로는 어떤 의미인가
영화에서 에드워드 페리먼 콜과 카터 챔버스는 공립 병원의 같은 병실에서 처음 만납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민영화한 병원에 환자로 입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고, 두 사람 모두 암(cancer) 진단을 받은 상태입니다. 암은 악성 종양이 신체 조직을 침범하며 전이되는 질환으로, 영화에서는 육종(sarcoma)이 뇌까지 전이되는 과정이 묘사됩니다. 육종이란 근육, 연골, 지방 등 결합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을 말합니다. 수술 성공 후에도 재발과 전이가 반복되는 현실이 영화 내내 두 사람을 압박합니다.
저도 항암 치료 과정에서 블레오마이신(bleomycin) 같은 항암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블레오마이신이란 DNA 합성을 억제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항암화학요법제인데, 폐 독성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알려져 있어 치료 과정에서 늘 선택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영화 속 에드워드가 화학요법(chemotherapy)을 두고 "뼈가 네이팜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표현하는 장면은 그 고통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기에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화학요법이란 화학 약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치료법으로, 정상 세포까지 손상시켜 구토, 탈모, 신경 손상 등 다양한 부작용을 동반합니다.
실제로 국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진단 직후의 심리적 충격은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암 진단 후 환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과정은 흔히 다음과 같은 단계로 나타납니다(출처: 국립암센터).
- 부정(denial): 진단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초기 반응
- 분노(anger): "왜 나인가"라는 감정이 폭발하는 단계
- 협상(bargaining): 어떻게든 상황을 되돌리려는 심리
- 우울(depression): 현실을 직면하며 찾아오는 깊은 슬픔
- 수용(acceptance):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단계
에드워드가 "해방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니었다"고 토로하는 장면은 이 수용의 단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저도 처음 진단 통보를 받던 날 비슷한 감정을 겪었기 때문에, 그 대사 하나가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줄거리: 병실에서 시작된 기적 같은 질주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 에드워드와 현명한 정비공 카터는 같은 병실을 쓰게 되며 우연히 인연을 맺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앞으로 살날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서 인생의 공허함을 마주합니다.
어느 날, 카터가 대학 시절 작성했던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 즉 '버킷리스트'를 끄적이다가 버린 것을 에드워드가 발견합니다. 에드워드는 이를 보고 "돈은 내가 다 낼 테니 병실을 나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하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무작정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들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최고급 스포츠카로 레이싱을 즐기며, 피라미드와 타지마할, 만리장성을 방문하는 등 화려하고 짜릿한 모험을 즐깁니다. 그러나 여행이 계속될수록 두 사람은 진짜 소중한 것은 물질적 쾌락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카터는 여행을 통해 평생 잊고 지냈던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며, 에드워드 역시 카터의 도움으로 오랫동안 절연하고 지내던 딸과 극적으로 화해하며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 에드워드 콜 (잭 니콜슨 분)수억 달러를 쥔 자수성가형 재벌 사업가입니다. 돈과 성공이 전부라 믿으며 까칠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암 선고를 받은 후 병실에는 찾아오는 가족 하나 없는 외로운 독거노인입니다.
- 카터 챔버스 (모건 프리먼 분)45년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자동차 정비공입니다. 대학 시절 역사 교수를 꿈꿨을 만큼 풍부한 교양과 지식을 가졌으나, 현실에 부딪혀 꿈을 접은 채 살아왔습니다.
진짜 버킷리스트는 모험이 아니라 관계였다
스카이다이빙, 머스탱 쉘비 드라이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만리장성, 피라미드. 두 사람의 버킷리스트는 화려한 외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눈길이 간 곳은 모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에드워드가 딸 에밀리와 쌓인 오해를 풀고 마침내 다시 만나는 장면, 그 한 컷이 저에게는 에베레스트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16세부터 일을 시작해 성공적인 병원 민영화 사업을 이끌었지만, 정작 딸과의 관계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딸의 남편 문제를 처리한 방식이 틀렸다고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방법이 아닌 소통의 부재가 관계를 끊어놓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가족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정보 비대칭'과 '감정 표현의 결핍'에서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가족관계학회).
저는 유방암 진단 후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겠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막상 그 질문 앞에 서보니, 커리어나 도전보다 아이들 곁에 더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에드워드의 말처럼 똑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 같으면서도, 그 선택이 가족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는 더 자주 들여다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영화가 말하는 버킷리스트의 진짜 완성은 카터의 편지한 줄에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기쁨을 찾으세요."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한 이 영화의 핵심 질문, "당신은 삶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그리고 당신의 삶은 타인에게 기쁨을 주었는가"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의 본뜻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버킷리스트란 원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이 단순한 체험 목록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과 용서를 담는 그릇임을 보여줍니다.
에드워드 페리먼 콜은 결국 에베레스트 정상이 아닌 딸의 이마에 키스하는 순간에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가 81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 그의 마음이 열려 있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선명한 장면입니다.
삶의 끝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 전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전화 한 통을 거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쪽이 훨씬 어렵고, 그래서 훨씬 가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또는 심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